올해 샤갤러리에서 선보이는 마지막 전시로 2025년 12월 15일부터 2026년 1월 9일까지 안창홍 개인전 《아마란스 꽃밭, 눈먼자들, 그리고 이름도 없는》을 개최하며 관람객을 맞이한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오랜 시간 일관되게 구축해온 주제의식과 예술적 호흡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며, 관람객으로 하여금 현대사회와 개인의 존재를 다시금 성찰하도록 이끈다.
전시는 〈아마란스〉와 〈이름도 없는〉 연작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안창홍 작가는 현대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과감하게 들추어내는 동시에 인간 내면 깊숙한 감정을 포착하며 특유의 서사를 구축해왔다. 이번 전시는 샤갤러리에서 선보이는 그의 두 번째 개인전으로 작가가 꾸준히 탐구해온 세계관을 더욱 밀도 있게 마주할 수 있는 자리이다.
〈아마란스〉 연작은 안창홍이 생명성과 존재의 근원을 탐구해온 작업 세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 시리즈다. 전시 공간을 가득 메운 화면 속에서 아마란스 꽃과 야생풀은 서로 뒤엉키며 치열한 생존의 순간을 드러낸다. 작가는 자연의 표면적 아름다움이 아니라, 그 이면에 놓인 생의 긴장과 소멸의 기운, 그리고 다시 피어오르는 힘을 응시한다. 검붉게 타오르듯 그려진 아마란스는 단순한 식물의 묘사가 아니라,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순환과 재생의 은유로 기능한다. 스러짐과 성장이 동시에 존재하는 색채와 질감, 화면을 가득 채우는 에너지 넘치는 붓질은 자연의 생동을 극적으로 부각시키며, 꺾이거나 쓰러지는 상황 속에서도 다시 피어오르는 생명의 의지와 존엄을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이 연작은 작가가 오랫동안 다뤄온 주제인 ‘존재의 강인함’과 ‘근원적 생명력’을 상징적으로 압축해낸다. 〈아마란스〉는 자연의 생태적 풍경을 넘어, 인간 삶의 회복력과 내면의 불굴의 힘을 비유적으로 사유하게 하는 작품으로 자리하며, 관람자에게 생명의 본질적 아름다움과 그 무한한 순환성을 다시 바라보도록 이끈다.
또다른 전시 공간의 〈이름도 없는〉 연작은 안창홍이 오랫동안 천착해 온 ‘인간의 존엄’과 ‘역사의 기억’이라는 주제를 응축한 작업이다. 작가는 얼굴의 개별적 특징을 지워버린 익명의 형상을 통해, 역사 속에서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채 사라져간 이들의 존재를 상징적으로 불러낸다. 화면 속 인물들은 특정한 시대나 사건에 직접 연결되지 않는 대신, 제주의 4·3사건, 5·18 광주 민주화운동 등 한국 현대사의 비극적 현장에서 희생된 무수한 민중의 모습을 포괄적으로 담아낸다. 익명화된 얼굴은 개인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누구나 될 수 있었던 존재’로 확장시키며, 억압과 폭력 앞에서 말할 수 없었던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또한 검붉은 색감, 거칠게 살아 있는 붓질, 무겁게 가라앉은 화면 구성은 집단적 상처와 애도, 그리고 남겨진 자들의 기억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안창홍의 이 연작은 단순한 역사 재현을 넘어, 사회적 폭력에 사라진 이름 없는 타자들에 대한 윤리적 응시를 요청하는 작업이다. 작가는 ‘기억되지 않는 존재’를 다시 호명함으로써, 국가와 사회가 잊어버렸거나 의도적으로 외면했던 역사의 어둠을 마주하도록 한다. 〈이름도 없는〉은 결국 과거의 비극을 현재의 관람자에게 가져와, 우리가 무엇을 기억하고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으로 자리한다.
안창홍은 1953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현재 양평에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어린 시절 형성된 직선적이고 거침없는 기질이 그의 내면에 자리 잡았으며, 제도권 교육을 거부하고 독학으로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구축했다. 이는 훗날 사회의 부조리와 현대 문명 속 문제를 직시하고 맞서는 예술적 저항 정신으로 이어졌다. 삶과 죽음이라는 근원적 질문을 향한 그의 시선은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하는 원동력이 되었으며, 그 결과 강렬한 힘과 깊이를 지닌 인상적인 작품들이 꾸준히 발표되었다. 아카데미즘에 얽매이지 않고 비범성과 독자성을 마음껏 밀어붙이며 '안창홍만의 예술세계'을 구축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재까지 국내외에서 약 50여 회의 개인전과 다수의 단체전을 통해 왕성한 활동을 이어왔고, 그가 발표한 작품은 3,000여 점에 달한다. 또한 1989년 프랑스 카뉴 국제회화제 심사위원 특별상과 2013년 이중섭미술상 수상을 통해 그 예술적 성취를 공고히 했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대구미술관 등 주요 공공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